말 한마디, 편지 한장도 남기지 않고 출가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째라니 참 세월이 빠릅니다.
내가 출가했을 때, 능엄스님은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휴가받고 견성암으로 찾아왔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견성암에 다녀간 뒤, 여러가지 고민이 담긴 편지를 보내 왔을 때, 현현스님이랑 의논해서 정봉스님과 인연을 맺게 해 준 일은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능엄스님의 편지를 받아보시고, 그렇게 긴 편지는 난생 처음 받아보았고, 그렇게 긴 답장(9장) 또한 난생 처음 써보셨다고 가끔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제대하고 그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 만나보고 싶던 친구들도 참 많았을텐데... 그걸 다 마다하고 할머님만 뵙고 지리산의 정봉스님에게로 곧장 온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합니다. 지리산에서 스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불법에 대해 배우고 또 그 더운 여름에 현현스님과 내가 살게 될 토굴을 짓느라 두분께서 땀흘리신 생각을 하면 아직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 때, 신심있게 행자생활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답니다.
능엄스님, 정봉스님께서 법명을 지어주신 뜻대로 지금까지 계율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늘 정진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출가 선배이자 속가 누나인 나에게도 참 귀감이 되었던 적이 많습니다. 금산사로 다시 출가해서 행자생활을 했을 때, 우리가 스님을 만나러 갔었지요. 지리산에서 우리가 춥게 지낸다고, 미안한 마음에 자기 방의 보일러를 잠그고 살았던 능엄 스님... 밤 늦게까지 법당에서 기도한다고 얼어서 피고름이 나 엉망이 되었던 손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신심있게 잘 살다가, 금산사에 찾아온 어떤 사람-자칭 도인-을 만나면서 정지견이 아닌 방향으로 힘들게 수행을 하면서 숱하게 마음 고생을 했을 때는, 참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정봉스님께서는 모든 것이 전생에 잘못 맺어진 인연의 소치라고, 꼭 겪고 넘어갈 일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며 몸과 마음이 더욱더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셨지만, 사실 난 애가 좀 많이 탔었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다시 마음을 내서 이번 여름에 여기를 찾아오고, 결국 삿된 가르침과 정법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다시 길러가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세 스님이, 스님에게 그릇되게 심어진 인식과 생활 습관을 바꾸려고, 삼칠일이 넘는 기간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눈이 빠질 정도로 애쓴 생각을 하면, 다행히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능엄스님! 3년이라는 시간이 어찌보면 아주 큰 시간낭비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님의 원력과 행이 깊어질수록, 외도와 함께 한 경험은 앞으로의 수행과 중생제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스님이 더욱 확고한 정지견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속가 가족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부처님의 법이 이렇게도 위대하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길을 따라 함께 출가해서 정진하는 능엄스님과, 결혼해서도 불법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속가 동생과 반려자 정인 보살님, 그리고 속가 부모님...모두 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희를 따라 오신채도 안먹고 채식을 하는 속가의 동생에게 친척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봤을 때, "누나와 동생이 모두 출가해서 수행하는데, 내가 도움이 되지는 못할 지언정 방해가 되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그런 이유로 채식을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뭉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속가에 인연맺어진 가족들과 그리고 함께 출가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능엄 스님, 이렇게 불법의 인연으로 회향하게 되어서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능엄스님! 이 길을 같이 가주어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이제, 지금까지도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로의 수행에 귀감이 되며, 그렇게 진실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언제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은사 스님과 어려울때마다 늘 함께 고민해 주는 현현스님이 있으니, 우리는 더 부러울 것이 없는 형제입니다. ^^
세세생생 날적마다 원력을 놓치지 않고, 항상 서로를 출가수행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도반으로 맺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진 합장


